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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 can't manage what you can't measure" Peter Drucker
물류

[물류 관련 책] Moving Mountains Logistics from the Gulf War #1

by Vitaminymc 2024.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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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gistics는 병참( Logistique) 불어 단어가 어원이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여러 요소 중에서 Logistics의 중요성처럼 기업의 물류도 매우 중요하다. 걸프전에서 군수 사령관으로 근무한, 윌리엄 거스 파고니스(William Gus Pagonis) 중장의 저서인 "Moving Mountains: Lessons in Leadership and Logistics from the Gulf War"의 책을 통해서 물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Moving Mountains: Lessons in Leadership and Logistics from the Gulf War]

산을 옮겨라 : 걸프전의 리더쉽과 물류 (Logistics, 병참)에 대한 교훈
 

걸프전 (Gulf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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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쿠웨이트 침공

1990년 8월 2일, 이라크군은 최정예 공화국수비대를 중심으로 30만 병력을 투입하여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쿠웨이트군은 전쟁 준비도 제대로 안 되어 있었던데다 이라크군의 급작스런 기습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했다.  8월 8일 이라크의 쿠웨이트 합병을 선포하고 쿠웨이트를 이라크의 19번째 주인 쿠웨이트 주로 삼았다. 

미국은 이라크가 친미 국가인 쿠웨이트를 병합한 것에 크게 반발하며, 이라크에게 당장 쿠웨이트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국제연합에서도 이라크에 쿠웨이트에 대한 합병 철회와 쿠웨이트 침공 이라크군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철군시한은 1991년 1월 15일까지였다. 이 결의안 채택과 함께 이라크에 경제 제재가 가해졌다. 

미국은 사막의 방패 작전(Operation Desert Shield)을 통해 1차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해 교두보로 삼기로 했다. 전쟁이 시작된 지 일주일만인 8월 9일 이미 2개 여단의 공수부대가 빠르게 전개되었으며, 항공전력을 배치하여 방어를 굳건히 했다.

이라크가 합병 철회와 철군을 모두 거부하자 마침내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991년 1월 12일 이라크에 선전포고를 했고, 1월 17일 미군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이라크에 폭격을 가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작전명이 '사막의 방패'에서 사막의 폭풍(Operation Desert Storm)으로 변경되었다.

사막의 폭풍 작전 중 공중 폭격이 끝나고, 다국적군은 2월 24일부터 "사막의 기병도(Desert Sabre)"라는 작전명 아래 본격적으로 지상전에 돌입하였다.

최소 2만 명의 전사, 실종자를 포함한 10만여 명의 사상자라는 심각한 손실을 입은 이라크군은 철수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지상전 돌입 100시간만에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전쟁 종결을 선언했다. 

 

Source : https://namu.wiki/w/%EA%B1%B8%ED%94%84%20%EC%A0%84%EC%9F%81


걸프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탈(侵奪)이 계기가 되어,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이라크와 쿠웨이트를 무대로 전개된 전쟁. 미국은 이라크의 철수 시한 이틀 뒤인 1991년 1월 17일 대공습을 단행하여 이로부터 1개월간 10만여 회에 걸친 공중 폭격을 감행, 이라크의 주요 시설을 거의 파괴하였다. 2월 24일에는 전면 지상 작전을 전개,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군을 축출한 뒤 지상전 개시 100시간 만인 2월 28일 전쟁 종식을 선언했다.

 

Source : https://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010873&supid=kku000015077

[🚛Willam G. Pagonis 윌리엄 거스 파고니스]

저자 : 윌리엄 거스 파고니스(William Gus Pagonis) 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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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4월 30일 출생 (Charleroi, Pennsylvania, U.S.)
- 1964년 ROTC 미국 육군 장교 임관
- 1993년까지 29년 동안 복무 후 중장(3 Star)으로 퇴임
1990년 8월~1992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중부사령부 제22 전역 육군 지역 사령부 사령관 1991년 걸프전 미국 군수 책임자 역임1992년 1월~1992년 6월 미국 육군 물자 사령부 사령관 (U.S. Army Materiel Command)1992년 6월~1993년 10월 미 육군 유럽군과 독일 제7군에서 복무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William_Pagonis

 

[Moving Mountains 원서 표지]

출판일 : 1992년 8월 1일 (Harvard Business Review Press)

Source : https://www.amazon.com/
 

[Moving Mountains (산을 옮겨라) 번역본 표지]

출판일 : 2008년 11월 4일 (삼양미디어)
번역 : 로지스올
(현재 절판)

한국어 번역 버전 (Source : 교보문고)

[📘목차 (영문, 한글)]

Chapter 1 Come As You Are

Chapter 2 Basic Trainning

Chpater 3 Opportunities of a Lifetime

Chapter 4 I Get the Call

Chapter 5 Desert Shield

Chapter 6 Desert Storem and Desert Farewell

Chpater 7 Building Blocks of Leadership

Chapter 8 Lessons in Leadership and Logistics
제1장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와라

제2장 기초 훈련

제3장 일생일대의 기회

제4장 호출을 받다

제5장 사막의 방패 작전

제6장 사막의 폭중 작전과 사막의 고별 작전

제7장 리더쉽 구축

제8장 로지스틱스(병참, 군수지원)과 리더쉽에 대한 교훈

 

[📘Moving Mountains 산을 옮겨라 주요 구절]

아래 내용은 책 내용을 그대로 또는 일부 수정 ( 문구 수정, 보충 설명 추가 등) 한 내용임
각 Chapter의 주요 내용은 '더보기'를 클릭하면 볼 수 있음

[Preface]

전통적으로 로지스틱스는 눈에 뜨지도 않으며 특별히 찬사를 받는 활동도 아니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투가 성공했을 때에는 전략이나 전술을 치켜 세운다.
반대로, 탱크 기름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군수(병참) 책임자(logisticians)을 향해 사냥한다.  
 
허버트 노먼 슈워츠코프 (H. Norman Schwarzkopf) 사령관은 1991년 2월 28일, 유명 언론 컨퍼런스에 군수(병참, logistical) 작전을 수립하고 실행한 수천 명의 남성과 여성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것은 어마마한 성과였다. 군수 지원을 완벽하게 해낸 병참 담당자(logisticians)와 수송 담당자(transporters)에게는 어떤 찬사도 아깝지 않다,"

 

허버트 노먼 슈워츠코프 (H. Norman Schwarzkopf) 사령관 : 걸프 전쟁 지휘 사령관

노먼 바르츠코프(Norman Schwarzkopf) 장군은 그의 회고록에서 파고니스를 전쟁의 "물류 마법사 (Logistical wizard)"로 칭송했다.

[Chapter 1 Come As You Are,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와라]

군대에는 수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들 군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항상 그 종류가 수없이 다양하며 또한 복잡하다.

군수 지원 담당자들은 불확실한 것들을 다룬다. 즉,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들의 발생 가능성을 제거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불확실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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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이 발발하기 전과 전쟁 중, 그리고 전쟁 이후 기간인 1990년 8월에서 1991년 8월까지, 서남아시아에 주둔한 미국 내 군수 지원 담당자들은 1억 2천2백만 명 이상의 식사를 계획하고 운반하여 군인들에게 제공했다. 같은 기간에 보급부대는 13억 갤런(약 49.2억 리터)의 연료를 소모했다. 보급부대와 그 보급부대와 계약한 운전사들은 전쟁터에서 약 5천 2백만 마일 (약 8천 4백만 Km) 거리를 운전했다. 이는 달을 100번 이상 완주한 것과 같은 거리다. 즉 세계 일주를 2천 번 이상 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군대에는 수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들 군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은 항상 그 종류가 수없이 다양하며 또한 복잡하다. 전차, 수송기, 탄약을 필요로 하며, 빵 굽는 사람이나 공무원, 목수, 출납원, 장의사 심지어 카운슬러도 필요하다. 그리고 군대를 위한 이정표(교통 표지판)도 있어야 했다.

군수 지원 담당자는 수송과 보급, 창고 보관, 유지, 물품 조달, 계약, 그리고 자동 설비가 일률적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도록 총괄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

군수 지원 담당자들은 불확실한 것들을 다룬다. 즉,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들의 발생 가능성을 제거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불확실한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기 위해 시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걸프전에서 수행했던 일이다.

걸프전은 '배치', '전투', '재배치(철수)'와 같은 3가자의 특징적인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배치 단계는 '사막의 방패'라는 코드네임으로 공식적으로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지 6일째 되던 1990년 8월 7일에 시작되었다.  1990년 8월 첮 주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우리의 거점은 상당히 보잘 것 없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아랍의 민감한 반응은 사우디아라비아 땅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소규모 부대만이 훈련과 기지 건설 목적으로만 주둔할 수 있었다.

'사막의 방패 작전' 수행하던 첫 달 동안 연합군의 도전 임무는 이라크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향해 퍼붓는 맹공격을 지연시키거나 방해하기 위해 충분한 병력과 장비를 전장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군수 지원 본연의 중요한 도전 임무였다. 

 

육군 제7군단은 11월에 독일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제7군단의 M1A1 아브람 전차들은 북유럽의 숲에 숨겨질 수 있도록 짙은 황록색 페인트로 위장되어 있었다. 우리 제22 지원 사령부는 사막에 적합한 갈색 페인트로 전차를 다시 칠했다. 최신식 M1A1 전차에 120mm 전차포가 장착된 반면 다른 많은 전차들은 105mm 전차포만 장착된 채 전장에 투입되엇다. 이에 따라 우리는 미군의 육군 물자 사령부(AMC, Army Materiel Command,  미 육군의 주요사령부(Major Command) 중에서 육군의 군수 업무를 전담하는 조직)에서 우리와 같은 임무를 담당하는 이들과 함께 105mm의 전차포를 120mm 전차포로 교체하는 계획을 수행했다. 

 

연합군과 이라크군 간의 전쟁은 1991년 1월 17일 새벽 2시 30분에 시작되었으며, 그때 연합군 군용기가 이라크와 쿠웨이트 내의 목표물을 포격했다. 군용기들은 첫 24시간 동안 2500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일주일 동안 12000회 이상, 2월 22일까지 91000회 이상을 출격했다. 그 사이 연합군은 지상전 방어를 위한 준비를 가속화했다. 연합군은 이라크 국경 방어진의 서부 측면을 돌아 후방으로 가는 우회 전략 (end run, 미식 축구에서 공을 든 선수가 볼을 가지고 공격 라인의 끝 바깥으로 달려서 적의 측면을 크게 돌아 돌진하는 플레이)을 추진했다. 이와 같은 측면 이동은 상대 진영 공격을 위해 두 개의 군단과 모든 장비들이 적재되어 서쪽과 북쪽의 아주 먼 외딴 곳까지 수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월24일에 시작된 지상전은 정확하게 100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우리는 이라크 군대가 한 달이라는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붕괴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라크 군대는 겨우 4일을 버텼을 뿐이었다. 우리는 군수 지원 담당자로서 지금 이라크 내부에 깊숙이 침투하기 위해서 추가적인 군수 지원 기지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축하했다. 또한 정전의 의미는 부족한 연료, 음식, 탄약, 물 또는 의약 설비를 교체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했다. 

전쟁의 세 번째 국면인 재배치(철수)가 몇 달째 진행 중이었다.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휴전으로 인해 재배치(철수) 시기를 극적으로 앞당겨야만 했다. 사우디인들은 우리가 하루 빨리 철수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사막의 고별 작전'이라는 별명이 붙은 재배치 작전은 이전의 초기 작전 단계보다 오히려 더 중대했다. 짧은 전쟁 수행 기간 동안 사용되지도 않을 막대한 양의 탄약 비축량과 같은 수많은 전쟁 보급품이 전장으로 수송되었다. 이용되지 않은 물자들이 있다면 배나 비행기에 다시 싣기 전에 전장이든 항구에서든 다시 이 물자들을 한데 모아야 한다. 배에서 물자들을 내리는 데는 평균적으로 3일이 걸리지만 다시 싣는 데는 꼬박 5일이 걸린다.

 

재배치(철수)에 고려해야 할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주의를 기울어야 할 임무가 너무나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임무들은 최소한 처음 들었을 때에는 임무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 부대가 해외에서 미국으로 재배치되면, 농림부는 농작물에 해를 입히는 해충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군 장비 전체를 완벽하게 소독한 뒤에 미국으로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항공에서 소독을 할 수도 있지만 여러 가지 복잡한 원칙들을 내세우는 환경 보호국의 간섭 때문에 실행이 어렵고 비용도 더 많이 든다.)

갑작스런 종전으로, 더 많은 미국제 스팀 청소기를 빠른 시간 안에 동원해야 했으며, 다급한 시간 속에서 다량의 물을 조달해야만 했다. 그것도 사막에서 말이다. 게다가 세우기 힘든 공법으로 거대한 세차장을 각기 다른 다섯 곳에 만들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살균 장비를 본국으로 수송하기 전까지 보관할 수 있도록 1.5km에 달하는 지역을 살균 지역으로 확보해야만 했다.(다른 업무들도 이와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을 명심하라.)

두 번째는 전체적인 재배치(철수) 임무의 순수 영역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전 이후 거의 반년이 지난, 1991년 8월에 국방부의 한 장관이 물류 운영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란(Dhahran)을 찾았다. 나는 그가 이곳을 찾은 데에는 물류 수송이 왜 이리 오래 걸리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도 포함되어있다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아마도 워싱턴에서 진행했던 브리핑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우리가 다란에서 시행한 브리핑도 만족스럽지 못할 터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를 킹칼리드 군사 도시(King Khalid Military City, KKMC)에 있는 우리 보급창으로 데려가 아직도 남아 있는 물자들을 보여주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방문객을 블랙호크 헬기에 태워 KKMC 보급창 주위 상공을 한 시간 넘게 날았다. 우리 발밑에서 옮겨지고 있는 수억 달러 가치의 장비들을 보며, 난 우리 방문객이 실태를 깨닫는 값진 경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Chapter 3 Opportunities of a Lifetime, 일생일대의 기회]

정글 깊은 곳에 중포 기지를 한번 세우게 되면 제1선 부대가 수십 마일, 또는 수백 마일을 이동한다고 해도 중포 기지는 보통 이동이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부대의 요구에 둔감한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군수 지원과 관련된 이런 모든 문제들은 징집과 12개월 순환 보직 체계의 조합으로 생겨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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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1월 18일, 나는 제 501 보병여단 예하의 제2 대대에 부대대장으로서 복무하게 되었음을 보고했다.

베트남에서의 두 번째 복무는 전략적으로, 그리고 군수 지원, 전술적 분야에도 전투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너무나 귀중함 경험이 되었다.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군 전략은 적군에 대항할 다양한 육해공의 강력한 화기를 운반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이처럼 화기의 규모로 밀어붙이는 접근 방법은 무기의 어마어마한 비축과 여분의 무기, 그리고 다른 보급품들이 베트남 남부 지역 주변의 중요한 전략 요충지에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우리 전장 군수 지원 체계의 중추인 이 요충지들이 바로 중표 기지인 것이다. 정글 깊은 곳에 중포 기지를 한번 세우게 되면 제1선 부대가 수십 마일, 또는 수백 마일을 이동한다고 해도 중포 기지는 보통 이동이 불가능하다. 최악의 경우 부대의 요구에 둔감한 치명적인 결점을 가지고 있다. 

중포 기지가 커질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롱빈 (Long Binh)과 캄란 (Cam Ranh)에 있는 거대한 보급소들은 반응이 늦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반응이 늦은 이유 중 하나는 매일 물밀듯 밀려오는 컨테이너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급소를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도 확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걸프전 때도 계속되었으며, 결국 육군은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베트남에서 군수 지원과 관련된 이런 모든 문제들은 징집과 12개월 순환 보직 체계의 조합으로 생겨난 것들이었다. 

 

1988년 6월에 나 별 2개인 소장이 되었다. 워싱턴으로 돌아와 군수참모부 (Office of the Deputy Chief of Staff for Logistics, ODCSLOG)에서 계획 운영 차장 (Director of Plans and Operations)으로 복무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우발적인 사건 해결을 위한 계획을 구상하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에 대처하기 위한 필요 물품을 기획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만일 오늘 어느 나라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효과적으로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보급품은 무엇일까? 그리고 어떻게 그 물품들을 전쟁터에서 효과적으로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이는 아주 막대한 임무였다.

내 다음 직위는 평화시에 우리 부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예측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여전히 군수참모부에 있으면서, '수송, 에너지, 부대 지원'을 맡게된 것이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군인들의 이동을 위해 전략적인 이동 정책을 발전시켰다. 또한 군인들의 부양 가족과 화물, 가재도구들의 이동을 조절하기 위한 계획도 세웠다. 우리 부대는 전 세계의 물과 유류 군수 지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부대 지원은 광범위한 세부사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육군 매점체계 (PX와 구분됨)을 감독하고 관리한다. 또한 전장에서의 식량 보급을 책임진다. 전시와 평시에 바로 먹을 수 있는 전투식량 (Meals Ready to Eat, MRE)과 미미 포장된 다른 물품들을 통합된 급식 체계에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가를 담당하는 것이다. 우리 부대는 군복과 군화, 그리고 모든 형태의 의류를 주문, 분배, 개선할 책임이 있었다.

 

펜타곤에서 2년을 보낸 뒤, 나는 1989년 두 번째 별을 달게 되었고, 육군과 나 모두 내가 새로운 도전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는 다시 조지아 주의 맥퍼슨 기지로 보내져 미국 본토에 있는 모든 군수 지원을 책임지는 군사령부 본부에서 군수참모 (J4)로 복무했다.

 

'J4'의 '4'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전 세계 대부분의 육군은 기능 분야를 7개로 나누어 각각의 기능을 숫자로 일관되게 표시하고 있다. 1은 인사, 2는 정보, 3은 작전, 4는 군수 지원, 5는 주제국 연락 장교 또는 해외 주둔 자욕, 6은 통신과 지휘 통제, 7은 대외 무기 판매 및 외국 관련 사무를 의미한다.

[Chapter 4 Get the Call, 호출을 받다]

첫 번째는 본국에서 수송된 무기와 보급품들을 옮기는 동안 전쟁에 부대들을 수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요소인 전방 이동은 방어적 위치를 사수할 수 있도록 계획된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지는 임무 수행을 위해 이 부대들을 존속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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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4일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가능한 빨리 존 요삭 (John Yeosock) 중장의 숙소로 가서 긴급회의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요삭 장군의 집안 분위기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는 계획 구성에 도움이 될 만한 각 분야의 전문가 15명을 한테 불러 모았다. 거기서 알게 된 내 역할은 홍보 담당자로서 군수 지원과 관련된 질문들이 생기면 그에 대답하는 것이이었다. 나는 일찍이 1980년 후반부터 요삭 장군과 함께 독일로의 부대 귀한(REFORGER) 임무를 수행해왔다. 나는 큰 규모의 부대와 물자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빠르고 질서 정연하게 이동할 때 발생하는 복합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요삭 장군은 내가 그 문제들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독일로의 부대 귀환 임무에 포함된 군인들을 먹이고 재우고 이동시키기 위한 기반 시설은 잘 정비돼 있었다. 주둔국 지원을 포함한 공급 라인은 유휴 계약을 통해 진행된다. 다만 이 계약은 계약 당시에는 효력이 없다가 작전이 개시되면 그 즉시 자동적으로 발효된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이 같은 군수 관련 이점을 기대할 수 없었다. 사실 중동 어느 곳에도 우리의 공식적인 주둔지는 없었다. 그리고 오만 (Oman)과 바레인 (Bahrain)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육군 비축 물자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독일로의 부대 귀환 임무를 수행할 때는 '누구'와 '언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 군인들을 배치하기 위해서는 '누구'와 '언제'는 물론, 그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인 '무엇'과 '어디', 그리고 '어떻게'를 분명히 알아야 했다.

요삭 장군의 임무는 군대 용어로 당시 상황의 'METT-T' 평가를 수행한다고 한다. 

METT-T는 다섯가지 기본 영역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임무와 적, 지역, 부대, 그리고 가용 시간이다.

(mission, enemy, terrain, troops, and time available)

METT-T 그 자체는 수시로 변하는 전장의 정보 흐름을 체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절대 정확하다고 볼 수가 없다. 상황이 변하면 그에 따라 METT-T도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METT-T의 다섯 영역의 각 세부사항들을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는 내내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까지 임무에 대해 알게 된 거라고는 미군 부대와 무기들을 사우디아라비아에 급파해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쿠웨이트를 점령한 이라크 군사의 침공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막 지역과 환경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군부대는 물론 무기에도 커다란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동시에 평탄하고 지형지물이 없는 지역 또한 전술가들과 군수 지원 담당자들이 새로운 전술을 구상해야 할 잠재적 분야디.

전장에서 미군 부대가 부족할 경우 기본 시설을 포함한 군부대 주둔 시설을 만들 필요가 있다. 주둔국이 훌륭한 항만 시설과 비행장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가용 시간은 정확히 정해지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아주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사담 후세이의 부대는 언제든 사우디아라비아를 공격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쟁 초반이 상당히 취약하다.

 

하나의 그룹을 이룬 우리는 군수 지원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독일로의 부대 귀환 때와 마찬가지로, 기본 구조와 활동은 세 가지 기본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본국에서 수송된 무기와 보급품들을 옮기는 동안 전쟁에 부대들을 수용하는 것이다. 두 번째 요소인 전방 이동은 방어적 위치를 사수할 수 있도록 계획된 위치로 이동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지는 임무 수행을 위해 이 부대들을 존속시키는 것이다.

계획의 첫 번째 요소인 부대 수용에 필요한 것은 분명했다. 바로 부대 수용이 필요한 적합한 장소다. 적합성이란 수용하게 될 물품과 군인들의 특징, 수송 수단, 이후의 진행 계획, 그리고 작전 수행과의 직접 관련성에 의해 정의된다.

당시 부대 배치 일정은 무척이나 빡빡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부대와 막대한 양의 보급품들을 세계 각지에서 사우디아라비아로 항공편을 통해 공수해야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북동쪽 구석 다란 (Dhahran)d에 있는 비행장은 거대한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다란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두 번째 비행장이 건설 중이었다. 사담 후세인에게는 해군이 없었다. 덕분에 우리는 해상 사전 배치 선단이 항구에 무사히 도착할 거라고 확신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커다란 항구가 세 곳 있다. 그 중 제다 (Jidda)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뛰어난 항만 시설을 갖춘 항구이다.

군수 지원 계획의 다음 단계인 '전방 이동'은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의 호의에 전적으로 의지했다. 어떻게 수천 명의 이르는 군인들과 수백만 톤에 이르는 보급품을 비행장과 항구에서 수송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내 경험에 기초에 흔들림 없는 정책을 발전시켰다. 즉, 배에서 짐을 하역할 때 부두에 아무것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부두에서 물자를 옮길 수 있는 충분한 수송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유지'는 준비하기가 가장 어렵다. 몇 달 또는 몇 주 뒤에 일어날 사건에 대비하는 측면에서 이루어지기 대문이다. 해상 보급로가 확보되면 우리는 보급품들을 받아 볼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음식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물론 군인들은 전투 식량을 먹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건조식품인 전투식량은 사기를 진작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군 정책에 따르면 가능할 경우 군수 지원 담당자는 신선한 준비된 음식을 찾아내야 한다.

MT-GLEO Combat Analysis Framework

Image Source : https://www.armyupress.army.mil/Journals/Military-Review/Online-Exclusive/2022-OLE/Razma/

 

A New Combat Analysis Framework

Few would disagree with the assertion that management, when combined with leadership and command and control, is one of the core combat competencies of commanders, whatever their rank.

www.armyupress.army.mil

[Chapter 5 Desert Shield, 사막의 방패 작전 (1/2) ]

우리는 긴박한 업무에선 한 발짝 떨어져서 현재의 수치를 사용하여 장래의 어떤 궁극적 수치까지 투영해 볼 수 있는 구조화된 기구가 필요했다.

나의 기본적 생각은 군단이 자기 보급품을 수령하는 보급창은 전방과 충분히 가까운데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군대가 전진하더라도 여전히 그 보급창으로부터 재보급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부대가 전진한다면 군수 지원 기지 (logbases)도 그들과 함께 전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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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부터 말까지 우리는 늦여름의 혹독한 날씨와 가혹한 사막 환경에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초적 기반 시설을 설치하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종잡을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우리는 기본적인 3개 단계에 끈덕지게 매달렸다. 수용, 전방 이동, 유지가 그것이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이었다. 오후에는 열기가 약 48도를 오르내렸고 밤에도 그다지 시원해지지 않았다. 물만 구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물을 사막의 태양 아래 방치하거나 냉장 보관하지 않으면 이내 긇어버려서 마실 수 없게된다. 그래서 우리는 즉시 현지를 돌명 병에 든 물과 냉장차를 찾아보았다.

아직 주둔국 식량 보급 계약은 이루어진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 전투식량을 무한정 보급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굶주리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계약한 냉장차가 있어서 우리는 휴대식량을 씻을 물이 있었다. 생존에 필요한 식량과 식수를 확보한 셈이다.

숙소도 문제였다. 비어 있는 관공서 건물들과 유목민 텐트 더미 등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자원과 베트남 전쟁 시대의 이동식 화장실과 샤워 시설의 시제품을 만들어 생존을 위한 환경을 만들었다.

 

호텔 캘리포니아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둔 미국의 훈련 임무 현장에 있는 소규모 레크레이션 센터에 우리의 중앙 계획본부를 설립했다. 전에 무도장이었던 곳에는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책상과 걸상이 들어갔다. 나는 무대 위에 자리를 잡고, 벽에 초대형 지도를 걸었는데, 그 지도에는 작전 지역에 사람들의 이동 상황과 그들을 지원하는 군수 지원 보급망이 표시되어 있었다. 모든 군수 지원 참모들이 또한 그 큰 방 하나에서 일하고 있었다.

곧 우리가 두 가지  구별되는 종류의 과업에 직명해 있고 이들 과업은 서로 다른 형태의 조직이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한편으로 우리는 시급한 문제를 해결할 단기적 문제 해결 조직이 필요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작전 지역 내 병력수를 감안할 때 해답은 식혹하게 찾아내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매일 급류처럼 쏟아지는 요구사항과 필수품에만 집중하여 전쟁내내 불을 끄는 역할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대신, 우리는 긴박한 업무에선 한 발짝 떨어져서 현재의 수치를 사용하여 장래의 어떤 궁극적 수치까지 투영해 볼 수 있는 구조화된 기구가 필요했다.

군수 운영센터, 혹은 LOC의 방 한쪽에는 수송 전문가 집단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유류 전문가들이 있었으며, 식료품 조달 전문가, 공항 및 항구 운영 요원들은 뒤섞여서 방 가운데 테이블들을 채우고 있었다.한방에서 같이 일한다는 것은 커다란 이점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모든 관련 분야 전문가들로부터 실시간 반을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장기 계획의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얼마간 생각하고 의논한 후, 나는 후방 군수 운영센터 (LOC)와는 완전히 분리되지만, 보완적 역할을 담당할 기구를 창설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구가 군수실 (Log Cell)이며, 제22 지원 사령부의 눈에 띄는 혁신 중 하나였다.

군수실 조직은 "이라크군이 오늘 공격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의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매일 아침 그들은 가장 효과적으로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차량, 유류, 탄약, 식료품, 식수의 상세한 이동 계획을 제시했다. 이 시나리오는 시간마다 관련 정보가 이용 가능해짐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되었다. 이것은 군수실에서 계획하는 수많은 시나리오 중 하나에 불과했다. 후방 군수 운영센터가 개발한 최신 정보를 사용하고 내가 요약한 시나리오를 풀어서, 나의 군수 지원 마술사들은 우발 사태에 대응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예비군이 현역으로 소집되었을 때, 슈워츠코프 장군은 순환(교대) 불가 정책을 선포했다. 다시 말하자면 군인들은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12개월 복무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공격 단계에서의 군수 지원 문제를 심사숙고했고, 나의 기본적 생각은 군단이 자기 보급품을 수령하는 보급창은 전방과 충분히 가까운데 위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군대가 전진하더라도 여전히 그 보급창으로부터 재보급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을 생각하는 데 있어서 나는 알렉산더 대왕과 북아프리카에서 롬멜과 싸운 영국 육군의 전술 연구에 의존했다. 슈워츠코프 장군과 나는 모두 베트남전 당시 설치했던 이동이 불가능한 중포가지는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설립된 보급망은 반드시 유연하고 이동 가능하며, 부대의 필요성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할 것이었다. 만약 부대가 전진한다면 군수 지원 기지 (logbases)도 그들과 함께 전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초기 단순한 3단계 계획 (수용, 전방 이동, 유지)은 내 판단으로는 우리의 궁극적 성공의 주춧돌이었다. 그 계획은 이해하기 쉬웠고, 분명한 목적과 목표를 제시해 주었다. 그 결과, 그 계획은 약간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좌표를 설정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계속 ➡️➡️➡️ 

https://logistician.tistory.com/entry/%EB%AC%BC%EB%A5%98-%EA%B4%80%EB%A0%A8-%EC%B1%85-Moving-Mountains-Logistics-from-the-Gulf-War-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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