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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물류 관련 책] 보급전의 역사 (Supplying War) #2 : WW1 마른 전투

by Vitaminymc 2024.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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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급전의 역사 (전쟁의 제1법칙 보급이 전장을 좌우한다)  ]


책의 4장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보급(병참) 역사를, 5장~7장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보급(병참) 역사를 다루고 있다.
4장은 1차 세계 대전의 마른 전투를 다루고 있다.

[📘보급전의 역사 (Supplying War) 주요 구절 ]

https://logistician.tistory.com/entry/%EB%AC%BC%EB%A5%98-%EA%B4%80%EB%A0%A8-%EC%B1%85-%EB%B3%B4%EA%B8%89%EC%A0%84%EC%9D%98-%EC%97%AD%EC%82%AC-Supplying-War-1

 

[물류 관련 책] 보급전의 역사 (Supplying War) #1

물류의 어원이 병참(logistics)이라는 측면에서, 군대의 물류체계에 대한 역사를 다룬 책이다. 모든 전공/학문의 개론(槪論)은 학문의 역사를 처음에 다룬다. 그 이유는 모든 학문이 철학에서 시작

logistician.tistory.com

보급전의 역사 Supplying War
4장 | 부서진 바퀴
전술의 상태
슐리펜 계획의 병참
계획 수정
마른 전투의 병참
철도의 상태
우익의 강도와 보강
결론
4. The wheel that broke
   State of the art
   Logistics of the Schlieffen Plan
   The plan modified
   Logistics during the compaign of the Marne
   State of the railroads
   Strength and reinforcement of the right wing
   Conclusions

[ 4장. 부서진 바퀴 ]

슐리펜 계획의 병참

슐리펜은 병참과 전략적 문제를 고려하다가 가공할만한 병참상의 난제 두 가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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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8 1914년의 군사행동에서 독일은 왜 프랑스의 정복에 실패했는가에 관한 논쟁은 전쟁 직후 바로 시작되어 지금도 여전히 격렬하게 계속되고 있다.
P.200~202 슐리펜 계획이 발의된 1897년부터 최종안이 완성된 1905년 12월까지 가장 먼저 고려된 것은 병참이 아니라 전략이었다. (중략) 슐리펜의 이 거대한 작전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결함이 있었지만 우리가 여기서 고려한 것은 병참 측면이다. (중략) 병참과 전략적 문제 사이의 충돌이 발생한 결과 슐리펜은 병참 측면에서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결정했다. (중략) 슐리펜이 새로 세운 우회작전의 규모가 한 가지 병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그것은 곧 새로운 두 가지 문제를 유발시켰다. 첫째, 작전 전체에 허용된 시간은 여전히 42일이었기 때문에 군대는 강행군을 해야만 했다. 특히 제일 후미를 형성하고 있는 병력은 영국 해협 부근을 지나 파리 후방의 센 간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400마일 (644km)을 행군해야 한다. 둘째, 긴 이동거리로 인해 본국에서 대단히 먼 거리에 있는 대규모 병력을 지원하고 보급해야 한다는 문제가 발생했다. 달리 표현하자면 슐리펜은 병참과 전략적 문제를 고려하다가 가공할만한 병참상의 난제 두 가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P.205 슐리펜이 참모본부 철도국에 양익(좌익군, 우익군)의 군을 서로 이동시키거나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으로의 병력 수송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한 광범위한 전쟁연습을 수행시켰음에도 정작 중요한 우익에 있는 부대의 보급 및 유지능력을 검토하기 위한 시험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 거대한 계획의 병참 측면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인상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중략)

* 슐리펜 계획(Schlieffen plan)은 알프레트 폰 슐리펜이 1905년 12월 작성한 독일 제국의 전쟁 계획이다. 프랑스의 강력한 방어선을 회피하기 위해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통과하여 프랑스를 침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계획이다. 
https://namu.wiki/w/%EC%8A%90%EB%A6%AC%ED%8E%9C%20%EA%B3%84%ED%9A%8D

 

슐리펜 계획

Kein Plan überlebt die erste Feindberührung. 적과의 첫 접촉 이후까지 살아남는

namu.wiki

 

계획 수정

슐리펜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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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7~208 1906년 1월 1일, 슐리펜은 예비역으로 전역하고 몰트케(小)가 참모총장이 되었다. (중략) 그가 취임한지 체 1개월도 지나지 않아 슐리펜 계획의 보급 및 수소상의 문제를 다른 첫번째 현실적인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중략) 
참모본부 철도국장 빌헬름 그뢰너 (Wilhelm Groener, 1867.11.2 ~ 1939.5.3)는 슐리펜 계획이 성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결론지었다. (중략) 벨기에에서 프랑스까지 거대한 군대를 유지시킬 임무를 맡고 있는 보급조직이 허용하는 것에 비해 진격속도가 너무나 빠르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모든 것은 정상적인 철도 운행에 의존하는데 ‘만일 철도가 철저히 파괴된다면’ 커다란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다. 그뢰너는 말이 끄는 수송대로는 전격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므로 ‘군대는 멈추어서 보급부대가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을 명확히 예측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동차에 의한 수송이 매우 유용하겠지만 그뢰너는 독일 육군이 자동차를 적절히 보급받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중략) 몰트케(小)는 몇 번이나 슐리펜 계획의 실행 가능성에 대해, 그리고 사실상 슐리펜의 전쟁 수행 개념에 대해 의심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계획을 대폭 수정하지 않고 그 계획의 기본적인 윤곽을 계속 전지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중략)

빌헬름 그뢰너 (Wilhelm Groener, 1867.11.2 ~ 1939.5.3)
https://namu.wiki/w/%EB%B9%8C%ED%97%AC%EB%A6%84%20%EA%B7%B8%EB%A2%B0%EB%84%88

 

빌헬름 그뢰너

빌헬름 그뢰너는 독일 제국군의 군인이자 독일의 정치인이다. 패전 후 잠시 독일 제국군의 참모총장으로 역임하였다. 생

namu.wiki

 
마른 전투의 병참

이따금씩 굶는 것을 감수하면 사람은 많든지 적든지 식량을 보급할 수 있었고, 말이 쓰러져 죽어도 사료 문제는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탄약은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자동차 수송중대는 중요하긴 했으나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운용되었기에 급변하는 전술적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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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8~219 말을 먹이는 문제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대가로 사실상 전쟁 초기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중략) 이따금씩 굶는 것을 감수하면 사람은 많든지 적든지 식량을 보급할 수 있었고, 말이 쓰러져 죽어도 사료 문제는 무시하면 그만이었지만 탄약은 보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중량) 소화기(小火器, 개인 화기, Small Arms and Light Weapons), 기관총, 야포, 구포(구포(臼砲)는 '구경에 비하여 포신의 길이가 짧고 사각이 큰 화포'. 구(臼)는 절구를 의미, 서양의 화포인 Mortar의 어원인 절구를 그대로 번역한 것), 중포 등은 모두 지속적인 보급을 요구했고 더욱이 그 속도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였다. 여기서 또한 말이 끄는 병참수송대는 완전히 실패하여 본래 임무를 수행하는 대신 이동 보급창으로 쓰였으며 어떤 때는 그 역할조차 수행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탄약을 공급하는 임무는 전적으로 수량이 절대 부족하던 자동차 수송중대들에게 넘겨졌다. (중략)
P.220 자동차 수송중대는 중요하긴 했으나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으로 운용되었기에 급변하는 전술적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더하여 급속히 전진하는 부대의 보급을 곤란하게 만드는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수송차량은 규정일 1일 최대 60마일 (96.6km), 1주일 중 6일을 달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사실상 너무 심하게 사용해서 마른 전투가 게시될 즈음에는 그 중 60%가 파손되었다. 그리고 운전병들은 24시간 운행했기 때문에 피로로 인해 많은 사고를 일으켰다. 사용하고 있는 차량의 종류가 워낙 다양했기 때문에 예비 부품, 특히 타이어는 획득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애초부터 여러 종류의 차량이 사용된 데다가 현지에서 징발된 차량을 수송대에 편입시킴으로 인해 차량의 종류가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탄약 소비량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대의 수송차량들이 아직 쓰이지 않은 탄약을 계속 싣고 있었으며 따라서 차량 수송부대가 짐을 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중략)

결론

슐리펜이 이러한 대작전을 구상함에 있어 병참에 결코 많은 주의를 쏟은 것 같지는 않다. 슐리펜 계획은 병참 면에서 실행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1914년 이후로 병사와 말이 필요로 하는 식량은 일반적으로 야전군이 필요로 하는 전체 보급물자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군대가 필요로 하는 물자의 대부분을 현지에서 조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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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6~239 슐리펜이 이러한 대작전을 구상함에 있어 병참에 결코 많은 주의를 쏟은 것 같지는 않다. (중략) 슐리펜이 수송이나 보급에 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아니었지만, 벨기에에서의 철도 파괴 형태를 신기하리만치 정확하게 예언했다. (중략) 1914년의 행군거리는 평시에 생각하던 것을 훨씬 넘어섰다. 토지는 비옥했고 계절도 매우 좋았다. 비록 철도 파괴는 일반적으로 예상한 것보다 심각했으나 가장 중요한 곳, 즉 제 1, 2군의 후방에서는 훨씬 경미했다. (중략) 비록 철도가 필요한 양의 보급물자를 수송할 수는 있었지만 철도종단점을 군의 지원거리 내에 위치하도록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는 없었다. 마른 강 전투 시에는 1개 군을 제외한 모든 독일군이 철도종단점의 지원거리를 벗어나 있었다. (중략) 전투가 독일에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하더라도 더 진격을 계속할 힘이 없었다고 믿을만한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그 주된 요인은 부대의 전진에 보조를 맞출 수 없었던 철도종단점, 사료 부족, 그리고 과로였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만으로 보자면 슐리펜 계획은 병참 면에서 실행 불가능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 것이다. (중략)
P.240 게르하르트 리터(Gerhard Ritter, 1888.4.6 ~ 1967.7.1, 독일사학자)가 기술한 대로 슐리펜이 계획한 작전이 범위와 대담성은 나폴레옹 시대에나 가능한 것이었고 또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선 다음 세대의 자동차 수송이 필요했던 것이다. 1914년 당시 독일군의 진격 규모와 요구된 보급품의 양은 이용 가능한 전술적 수송수단의 능력을 크게 초과한 것이었다. (중략) 1914년 이후로 병사와 말이 필요로 하는 식량은 일반적으로 야전군이 필요로 하는 전체 보급물자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군대가 필요로 하는 물자의 대부분을 현지에서 조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략)


YTN 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56회, 1차 대전의 향방을 가르다, 마른 전투"

https://youtu.be/XUPQX3IL8dE?si=MGq3ylX19OYodVjs

 

1870년 보불전쟁 후, 독일과의 전쟁에 패한 프랑스는 '프랑스 17계획 (1913년, 독일과의 전쟁 계획)'을 수립하고, 독일도 당시 참모총장 슐리펜이 '슐리펜 계획'이라는 작전 계획을 수립함
1. 슐리펜 계획은 전쟁이 발생하면 독일의 양쪽 전선인 프랑스와의 서부 전선과 러시와의 동부전선 중에 서부 전선을 먼저 정리하고 러시아를 상대하는 전략임 (프랑스보단 러시아군이 상대적으로 약할 것이른 예상과 러시아의 광대한 영토때문에 진격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을 고려)
2. 벨기에로 돌아서 프랑스군의 뒤를 공격하겠다는 전략

[제1차 세계 대전]
1914년 8월, 독일군은 슐리펜의 계획에 따라 서쪽으로 진군한다. 벨기에의 저항으로 예상보다 시간이 지체되고 무더운 날씨로 지친 독일은 슐리펜 계획대로 더 우회해서 프랑스군의 뒤를 공격하는 대신 계획을 수정해 파리 앞에서 지금길로 우회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독일 1군의 우측 전력이 드러나게 되고, 1914년 9월 4일 프랑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을 시행한다. 프랑스의 치열한 반격에 독일의 진격은 마른 강에서 중단된다. 9월 12일 프랑스와 영국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다. 패배한 독일군은 엔 강까지 후퇴하여 참호를 판다.
마른 전투 이후, 영국&프랑스군과 독일군은 서로의 측면을 공격하기 위해 북해까지 기동전을 펼친다. (바다로의 경주)
1918년 마른 전투에서 시작한 참호 대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끔찍한 참호전으로 이어진다.

한정된 자원으로 인해 단기간에 전쟁을 끝내고자 했던 독일은 보급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슐리펜의 계획은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독일 슐리펜 계획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파랑스 침공 경로
제1차 세계대전 영국프랑스군과 독일군의 바다로의 경주

나폴레옹 전쟁 前
전 국민이 동원되는 것이 아닌, 군인들끼리만 전쟁을 수행
한 사람 (영웅, 장군)의 역량에 따라 승패가 좌우

산업혁명 後
제1차 세계 대전을 최초의 총력전이라고 함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는 전쟁으로 변환

 

In preparing for battle
I have always found that plans are useless
but planning is indispensable.

No battle was ever according to plan,
but no battle was ever won without one.
Dwight D. Eisenhower

계획대로 승리한 전투는 없지만
계획 없이 승리한 전투도 없다.

 

 
 
출처 : https://rainmakervt.com/blog/plans-are-useless-but-planning-is-indispensable/


 

Pixabay로부터 입수된 Elias님의 이미지를 사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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