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의 어원이 병참(logistics)이라는 측면에서, 군대의 물류체계에 대한 역사를 다룬 책이다. 모든 전공/학문의 개론(槪論)은 학문의 역사를 처음에 다룬다. 그 이유는 모든 학문이 철학에서 시작된 것처럼, 해당 학문의 등장 배경과 역사를 배우면서 해당 학문의 전공자로서 사고 방식과 연구와 발전 방향을 알게되는데 있는 것 같다. 군대의 보급수송, 군수장교 뿐만 아니라, 물류 전공자, 물류관련 연구 또는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알아두면 좋은 내용일 것 같다. 또한, 군대의 지휘관과 회사의 C-Level도 물류(병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옮긴이의 글처럼 해당 국가의 역사와 지명, 인물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관련 정보를 검색하며 읽으면 시간이 걸릴 수 있으며, 그래도 이해는 충분치는 않다. |
[ 보급전의 역사 (전쟁의 제1법칙 보급이 전장을 좌우한다)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499200
저자(글) : 마르틴 반 크레펠트 (Martin van Creveld)
발행(출시)일자 2010년 05월 24일 (현재 "절판")
쪽수 454쪽
번역 : 우보형 (한양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으로 군사사와 병기 및 병기사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2004~2005년 <국방일보>에 ‘전사 속 신무기’를 연재)
Supplying War: Logistics from Wallenstein to Patton (1977, 2nd edition 2004)
https://en.wikipedia.org/wiki/Martin_van_Creveld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9830046
[📘목차 (한글, 영문) ]
보급전의 역사 | Supplying War |
옮긴이의 글 지은이의 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
Preface |
서장 | Introduction |
1장 | 지난 2세기 동안의 배경 약탈의 폭정 보급창의 등장 선형전의 시대 보급은 생명줄이었나? |
1. The background of two centuries The tyranny of plunder Rise of the magazine system The age of linear warfare 'An umbilical cord of supply'? |
2장 | 군대는 위胃로 행군한다 포위전의 종말 불로뉴에서 아우스터리츠까지 모스크바로 향하는 여러 길 결론 |
2. 'An army marches on its stomach!' The end of siege warfare Boulogne to Austerlitz Many roads to Moscow Conclusions |
3장 | 철도가 반신半神으로 숭배되었을 때 나폴레옹에서 몰트케까지의 보급 카드 속의 조커 대프랑스 전쟁에서의 철도 무장한 유목민에 대한 병참 철도가 승리에 기여했을까? |
3. When demigods rode rails Supply from Napoleon to Moltke A joker in the pack Railways against France Logistics of the armed horde Did wheels roll for victory? |
4장 | 부서진 바퀴 전술의 상태 슐리펜 계획의 병참 계획 수정 마른 전투의 병참 철도의 상태 우익의 강도와 보강 결론 |
4. The wheel that broke State of the art Logistics of the Schlieffen Plan The plan modified Logistics during the compaign of the Marne State of the railroads Strength and reinforcement of the right wing Conclusions |
5장 | 러시안 룰렛 반차량화된 군대의 문제 바르바로사 작전의 계획 레닌그라드와 드네프르 모스크바 문 앞의 폭풍 결론 |
5. Russian roulette Problems of the semi-motorized army Planning for 'Barbarossa' Leningrad and the Dnieper 'Storm to the gates of Moscow'? Conclusions |
6장 | 시르테에서 엘 알라메인까지 사막이라는 말썽거리 롬멜의 1차 공세 1942년 : 기적의 해 결론 : 아프리카에서의 보급과 작전 |
6. Sirte to Alamein Desert complications Rommel's first offensive 1942: Annus Mirabilis Conclusion : supply and operations in Africa |
7장 | 회계사들의 전쟁 계획의 함정 노르망디에서 센으로 ‘광역 전선’이냐 ‘예리한 돌진’이냐? 결론 |
7. War of the accountants The pitfalls of planning Normandy to the Seine 'Broad front' or 'knifelike thrust'? Conclusions |
8장 | 병참의 전망 | 8. Logistics in perspective |
후기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 Postscripit : Where are we now? |
[📘보급전의 역사 (Supplying War) 주요 구절 ]
[ 옮긴이의 글 ]
'병사는 굶주리면 허리띠를 씹어 먹으며 싸울 수도 있지만, 전차나 비행기는 연료가 떨어지면 끝'이라거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Napoléon Bonaparte)의 "군대는 위(胃, 밥통 위)로 행군한다"는 경구는 모두 전쟁에서 보급(혹은 병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중략>
1977년에 초판이 발간된...
1977년에 초판이 발간된 '보급전의 역사 (Suppling War : Logistics from Wallenstein to Patton)'는 16세기 중반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350여 년 동안에 일어난 전쟁을 7장으로 나누어, 시대에 따른 군대의 보급 경향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전쟁에서 꼭 필요하지만 종종 무시되는 병참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중략>
내가 이 책을 접한 것은 2002년부터 활동했던 하이텔의 제2차 세계대전사 연구회 '톰과 제리'에 신수기 님이 본문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부분을 소개하면서였다. 1941년 독일의 모스크바 공략작전(타이푼 작전)의 실패가 라스푸티챠나 겨울의 혹한 때문이 아니라 독일이라는 나라가 갖는 병참상의 한계 때문이며, 1942년 롬멜이 이집트 진격에 실패한 원인도 추축군이 몰타를 공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병참상의 한계를 무시하고 무조건 진격만 해댄 롬멜 스스로의 오판 때문이었다는 분석은 신선한 자극이었다. 그것이 이 책의 원서를 구해보고 나아가 한글로 번역하는 동기가 되었다. <중략>
북아프리카 전역과 보급문제 (다음카페 : 동방대제국 프로젝트)
- 모바일 : https://m.cafe.daum.net/Coreahosu/K8Pw/125
- PC : https://cafe.daum.net/Coreahosu/K8Pw/125
서유럽전역과 보급문제 ( (다음카페 : 동방대제국 프로젝트)
- 모바일 : https://m.cafe.daum.net/Coreahosu/K8Pw/126
- PC : https://cafe.daum.net/Coreahosu/K8Pw/126
[ 서장 ]
P.16~17 나폴레옹 시대의 프랑스 장군이자 역사가인 앙투안 앙리 조미니 (Antoine-Henri Jomini, 1779.3.6 ∼ 1869.3.24)은 병참을 '군대를 움직이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으로 정의했으며, 여기에는 '보급대의 지속적인 도착'과 '보급선의 설립 및 조직'이 포함된다고 했다.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병참이란 '군대를 움직이고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보급을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수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중략>
지휘관은 부대 기동에 대한 구상 또는 ...
지휘관은 부대 기동에 대한 구상 또는 참전, 전진, 침투, 포위, 섬멸, 적의 저항을 약화시키기 위한 모든 전술을 설명하기에 앞서 어떠한 임두도 중단하지 않도록 병사들에게 1일 3000칼로리의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다시 말해 병사들을 원하는 때, 원하는 장소로 수송할 수 있는 도로의 존재와 적절한 수송수단의 확보 여부부터 확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위대한 전략적 천재성이 아니라 성실한 노력과 냉정한 분석력이다. 이러한 분석력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아니기에 군사 사학자들에게 종종 무시되었다. 그 결과 군사사 관련 서적에는 지휘관이 결심하면 군대를 어떤 방향, 어떤 속도로든 원하는 만큼 멀리 이동시킬 수 있는 것처럼 쓰여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전역에서 적의 행동의 의해서가 아니라 사실 인식의 부재 혹은 붕괴 때문에 실패한 경우가 더욱 많다. <중략>
나폴레옹의 전술과 전략은 많은 이론가, 역사가 및 군인들의 관심을 끌었고, 그들은 나폴레옹의 전술, 전략이 계속된 발전의 부산물이라고 말한다. 나폴레옹 전쟁이 그 이전의 전쟁과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여겨지는 한 분야가 바로 병참 분야인데 이러한 사실은 그동한 병참 분야를 얼마나 등하시했었나를 입증하기에 충분한다. <중략>
[ 1장. 지난 2세기 동안의 배경 ]
약탈의 폭정
P.27 적지에서 작전하는 군대를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병참체계란 없었다. 사전에 그런 걸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태고부터 군대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약탈하는 것으로 간단히 문제를 해결했다. 많건 적건 간에 조직적인 약탈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라 일종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17세기 초에 이르면 이 체계는 점차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약탈로 유지하기엔 군대가 너무나 커졌던 것이다. (P.22 '군사적 혁명기'로 묘사된 1560~1660년 사이의 기간 동안 유럽 각국의 군대는 규모가 엄청나게 확대되었다.) <중략>
엄밀한 군사적 견지에서 볼 때, 예하 부대를 급양(Food Service , 給養)하지 못하면 지휘관은 그 군대를 통제할 수도, 또한 탈주를 방지할 수도 없었다. 16세기 후반에 이르면 지휘관들은 약탈 대신 규칙적이고 보다 확실한 공급원을 확보하여 식량, 사료, 병기, 때로 의복을 포함한 최소한의 물품들을 병사들에게 공급할 필요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기로 계약한 종군상인의 도움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비용은 병사들의 급료에서 공제했다. <중략>
P.31 병참선에는 거의 구속되지 않았던 17세기 군대의 전략기동은 하천의 유로에 의해 엄격히 제한되었다. 이는 보급품을 운반할 때 수로 쪽이 훨씬 쉬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향은 거의 모든 군대에서 나타났으며 보급부대를 잘 조직하는 지휘관일수록 수로에 의존했다. 배의 운반 능력이 말이 끄는 짐수레보다 훨씬 뛰어난데다 수로 운송에는 말 사료 같은 추가적인 요구가 없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P.42~43 리슐리에(Cardinal de Richelieu, 1585.9.9 ~ 1642.12.4,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귀족, 로마 가톨릭의 추기경, 루이 13세 시대 재상) 는 자신의 정치 논문 (Political Testament)에 다음처럼 기록했다. "역사를 통해 알려진 것보타 훨씬 많은 군대가 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물자 부족이나 무질서에 의해서 파멸했다." <중략>
프랑스인 미첼 프랑수아 르 텔리에(Michel Le Tellier, 루이14세 시대 전쟁국무장관, 군대 개편)와 그의 아들 루부아 후작 (Louis Charles César Le Tellier)은 보급창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이후 한 세기 반 동안의 전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물론 그 때까지 보급창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가난하고 황폐한 지역에서 전쟁을 해야 할 경우가 빈번히 발생했다. 이럴 경우, 17세기 초기의 군사 저술가들은 목적을 확실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입지조건이 유리한 마을이나 요새에 보급창을 세우라고 조언했다. 조건이 좋은 지역에 설치된 숙영지에는 비상시 외에는 손댈 수 없는 15일분의 식량을 항상 저장하도록 했다. <중략> 그러나 제한된 규모의 군대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원칙을 이행할 필요가 없었다. 보급창과 마찬가지로 기지에서 보급물자를 나르는 상설 수송대 또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필요하다고 여겨졌다.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고 수송대는 군의 편성에 포함되지 않았다. 필요한 짐수레는 상인과의 계약에 의해 혹은 더 자주 발생한 일이지만 농촌의 농사용 수레를 징발하여 사용했는데, 이와 같이 징발할 경우에는 농민에게 차용증을 주어 나중에 보상했다. <중략>
보급창의 등장
P.44~45 르 텔리에가 보급제도의 재건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1643년 4월, 전쟁성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다. 상비병참제도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전체 조건은 물론 정확한 소요를 산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은 너무나 기본적이라 당영한 것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르 텔리에는 우선 군대의 각 구성원이 어느 정도의 식량과 보급품을 받아야 하는가를 규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중략> 르 텔리에는 그때까지 군대가 개별적으로 맺은 임시의 특수계약조건에 대신하는 표준 계약조건을 설정하고 이를 철저히 적용했다. 이러한 계약조건하에서 전쟁성 장관은 종군상인에게 대금을 지불하고 통행세 및 기타 세금을 면재해주었으며 또한 경계부대를 제공해주었다. 종군상인은 일단 숙영지에 도착하면 장사를 할 장소나 군인의 난폭행위에 대한 보호를 보장받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손실에 대한 보장까지도 약속받았다. 그 대신 종군상인은 약속한 지역에 계약한 물자를 가져올 책임이 있었으며, 도착한 지역에서 병참책임관에 의해 그 품질을 검사받았다. 식량을 보급창에서 군대까지 수송하는 책임 또한 종군상인에게 있었다. 그들은 도중에서 일반 요금을 지불하고 짐수레를 징방할 수 있었고, 또한 밀가루를 군대 근처에 가져온 뒤에는 민간인 빵장수를 고용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시킬 수 있는 권한을 보장받고 있었다. <중략>
르 텔리에는 특정한 군 내부요원에 의해 지휘되는 상설 수송부대로 후방에서 식량을 운반하여 전장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군대와 함께 며칠분의 예비 식량을 보유한 이동 보급창을 끌고 가는 임무를 맡은 '식량보급대'를 창설하였다. <중략>
선행전의 시대
P.58 18세기의 전쟁의 특징은 정치적 목적에 직결된다는 것이다. 전쟁은 군주들 사이의 개인적인 싸움으로 여겨졌는데 어느 군주가 이웃 군주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거나 원한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편의 영토에 군대를 보내 양보를 받아낼 때까지 그곳에 군대를 주둔시켰던 것이다. 만일 전쟁 이후에 침공한 지역을 영구히 점령할 가능성이 있으면 장차 자기 나라가 될 지역을 조심스럽게 보전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으면 무자비하게 약탈을 자행했다. 어느 경우라도 보급창은 군대의 초기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국경을 넘어 적의 영토에 침입한 군대는 이후 양호한 도로나 하천 부근에 위치한 방어하기 좋은 장소에 참호로 둘러싸인 좋은 숙영지를 고르는 것이 상례였다.
P.71 사람과 말에게 필요한 식량의 극히 일부분만이 완성품의 형태로 얻어지는 이상,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는 군대는 필연적으로 제빵 기구를 보유하여 곡물을 수립하고 목재를 모아서 빵을 굽고 사료를 수집해야만 했다. 이 작업들은 수일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실시되어야만 했기 때문에 군대의 통상적인 기능이 얼마나 마비되었는가는 쉽게 알 수 있다. 보급문제 때문에 1개 군의 전투기능이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실질적으로 마비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었다. 사료(馬草, 말을 먹이기 위한 풀)를 모으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 특히 그랬다. 따라서 그 동안 기습을 받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프랑스 혁명 이전의 2세기 동안의 전쟁에서 탄약이 얼마나 소모되었는가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자료를 얻는 것이 대단히 곤란했는데 이는 탄약 소모가 그다지 중요시되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 <중략> 군대가 보통 전체 작전을 위해 가지고 간 1회 보급량은 대단히 적었지만 기지에서 재보급이 이루어지는 것은 더 더욱 드문 경우였다.
보급은 생명줄이었나?
P.77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병참이 과거 2세기 동안의 전쟁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이러한 영향은 군의 이동을 제약하는, 이른바 '보급이 군의 생명줄'이라는 가정과는 거의 관계가 없었다. <중략> 보급창은 군대에 필요로 하는 물자를 전혀 보관하지 못하거나 일부밖에 보관하지 못했고 이동 중인 프랑스군은 여전히 현지 획득에 의존했다는 것을 알았다.
[ 2장. 군대는 위로 행군한다. ]
포위전의 종말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P.80~81 1805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전쟁)부터 나폴레옹의 전략이 바뀌면서 후세 평론가들이 '섬멸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탄생했다. 나폴레옹이 구상한 새로운 전쟁 형태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중략>
새로운 전략을 채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러한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한 새로운 수단을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폴레옹의 휘하에는 막대한 규모의 군대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새로운 전략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병참 문제가 야기되었다. <중략>
P.83~84 예하 부대의 규모가 컸던 나폴레옹은 포위공격을 하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18세기식 보급제도를 거의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나폴레옹이 사용한 기술적인 수단들은 이전의 것들에 비해 나은 것이 없었지만 - 실제로 나폴레옹은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발명을 거부하고 옛 수단을 버리지도 않았다 - 거대한 군대로 유럽을 횡단해 만회할 수 없을 정도로 구세계를 완전히 파괴하고 함부르크에서 시칠리아에 이르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다.
블로뉴에서 아우스터리츠까지
P.84~85 전쟁성 장관은 식량의 보급, 의복의 지급 및 수송대의 운용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지만 그 권한은 프랑스 국경 내로 한정되어 있었다. 전장에서 보급 및 수송을 포함하는 행정문제에 대한 책임은 군의 행점감에게 있었으나 그것은 작전지역에 한정되어 있었다. 병참이라는 파이프라인의 양 끝에 연결된 행정과 보급은 잘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교전지역의 병참선을 관리하고 물자를 징발하는 영구적인 조직어 없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사태에 즉흥적으로 대처하고는 했다. 그 방법은 보통 전장에서 공적이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군 지휘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었다. 때문에 군 지휘관에 있어 이러한 임무를 맡게 된다는 것은 일종의 징계에 가까운 것이었다.
P.106 대육군의 탄약보급에 관해 언급하자면, 18세기에는 탄약 사용량이 대단히 적어 탄약 부족이 군의 작전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의 부대가 보유할 예정이었던 짐수레 4500대 가운데 2500대를 포병대에 할당했으며 - 이 짐수레는 보병의 탄약 보급량의 3분의 2를 운반했다 - 식량보급에 할당한 것은 단지 2000대뿐이었다.
결론
P.132~133 프랑스군이 보급창이나 잘 조직된 수송대를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1805년의 전역을 보았다. 당초에 계획했던 수의 수레를 확보하지 못했던 사실, 혹은 그 수레에 적재할 만한 양의 식량을 확보하지 못한 사실 때문에 나폴레옹은 그의 계획을 변경하고 그의 진격 방향을 독일의 빈곤하고 인구가 적은 지방에서 보다 풍요롭고 많은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다른 지방으로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울름(Ulm, 독일 서남부 도시)에 도착하자 나폴레옹은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전진을 계속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전례 없는 대규모 수송대를 조직하여 급양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나폴레옹은 바이에른 지방의 각 도시마다 거대한 보급창을 설치하고 전진하는 부대에 대한 지속적인 물자지원을 위해 수송 수레와 선단을 준비했다. 이러한 조건들은 작전 수행에 별 효과를 주지 못한채 실패로 돌아갔는데, 그 원인은 무엇보다 몇 개 되지 않는 도로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대부대가 밀접했기 대문이다. <중략>
보급물자의 일부만이 지원되었지만 대육군은 굶주리지도, 부대 주력이 붕괴되지도 않았는데 이는 병참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선견지명, 조직력과 통솔력의 승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략>
아우스터리츠에서 나폴레옹에게 대승리를 가능하게 했던 군사조직 - 행정 및 병참기구를 포함한 - 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결코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는 프랑스군의 약점을 충분히 알고 있어서 그 후의 전투에서는 많은 예비 물자를 보유하도록 명령했다. 더욱이 1807년에는 그 당시로서는 혁명적이라 할 만한 일보를 내딛었다. 즉 대육군 휘하에 처음으로 수례를 갖고 보급업무를 담당하는 부대를 편성한 것이다. 이 부대는 징발되거나 고용된 수레와 마부들이 아니라 군대의 인원과 장비로 구성되었다.
P.134~135 1812년의 군사행동을 살펴보자. 러시아 침공은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폴레옹이 취한 조치는 루부아가 계획했던 그 어느 것 보다도 탁월했다. <중략> 나폴레옹은 보급조직의 결점이 노출되기 이전에 전쟁을 끝낼 수 있도록 군사행동을 계획했다. 아무튼 나폴레옹은 그의 동생 제롬 보나파르트의 실수로 이미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했던 러시아군의 일부를 절단할 수 없었다. <중략>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동안 나폴레옹이 줄곧 염려했던 것처럼 대육군의 보급수송부대는 붕괴했다. 이 붕괴는 부대 자체에 문제도 있었지만 주로 불가능한 환경의 결과였으며, 병사들의 경험 부족이나 무관심, 부패 등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중략>
직접적 징발은 군대의 사기와 군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가급적 그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중략>
나폴레옹 군이 현지 징발에만 의존했다면 18세기의 전례와 마찬가지로 어떤 일정한 장소에 장기간 체류할 때마다 보급상의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P.136 프랑스군이 이전이 군대들은 성공하지 못했던, 도중의 모든 것을 파괴하면서 유럽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진격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요인들이 전례 없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부대들을 분산시켜 물자의 현지 획득이 용이하게 할 수 있는 군단제도를 채택했고 휴대물자가 없었으며 (이 휴대물자가 18세기 군대의 이동을 방행했다는 점에서 휴대 물자가 없어졌다는 것은 보급창에서 보급을 받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변화였다), 징발을 담당하는 상설기구가 존재했고... <중략>
[ 3장. 철도가 반신 (半神)으로 숭배되었을 때 ]
나폴레옹에서 몰트케까지의 보급
*몰트케 : 헬무트 카를 베른하르트 폰 몰트케 (Helmuth Karl Bernhard Graf von Moltke, 1800.10.26 ~ 1891.4.24, Moltke the Elder [독일어 Moltke der Ältere, 大 몰트케])는 프로이센 & 독일 제국 육군 원수 (헬무트 요하네스 루트비히 폰 몰트케 (Helmuth Johann Ludwig von Moltke, 1848.5.25 ~ 1916.6.18, 카를 몰트케의 조카)는 Moltke the Younger (小 몰트케)로 구분
P.138 워털루(벨기에 워털루에서 프랑스 제국과 연합군(대영제국, 프로이센, 네덜라드 연합왕국 등)의 전쟁1815년)의 포성이 멈추자 각국의 군인들은 나폴레옹 전역을 연구하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군의 전설적인 기동성이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에 병참 문제는 특히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는 군 지휘관들이 나폴레옹의 전법을 모방하려고 노력한 수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대프랑스 전쟁에서의 철도
P.172~173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870.7.15~1871.1.28(프랑스 공화국 정부 항복), 1871.5.10(양국간 종전조약 체결))에서 독일군은 많은 병력을 작은 공간에 집중시켰고 또한 많은 포탄을 소비했기 때문에, 독일의 파리 포위 및 포격은 철도가 없었으면 완전히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전쟁 초기 독일군의 철도를 이용한 병력 전개를 최고의 전술로 보는 것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전쟁 개시와 파리 포위의 두 가지 국면에 있어서 철도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 철도 그 자체에 내재된 문제 때문이고 한편으로는 철도종단점을 군대의 진격에 맞추어 적당한 거리 내에 유지시킬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무장한 유목민에 대한 병참
P.173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이후 역사가들은 보급 편제를 프로이센군의 최대 공적 가운데 한 가지로 간주하고 있으며, 몰트케(大) 자신도 역사상 어떠한 군대도 프로이센군만큼 식량보급이 양호하지는 못했다고 기술함으로써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했다. 독일군이 대프랑스 전쟁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보급의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편제의 우수성은 아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자체의 평가뿐만 아니라 군사기술 발전의 한 단계로서의 가치 또한 올바르게 평가하지 못했다. (중략)
P.175 라인 강변에서 몰트케(大)의 신속한 병력 전개는 전투부대와 수송부대를 분리함으로써 가능했으며, 그 결과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수송부대가 집결지역에 미처 도착하지 못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도보로 이동하는 전투부대와 말이 끄는 수송부대의 상대적인 이동속도를 비교할 때, 특히 전선과 철도종단점 사이를 왕복하거나 물자 보충을 받기 위해 일정한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수송부대가 전투부대를 따라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수송부대가 국경지대에 도달할 때까지는 독일군은 민가에서 숙영하고 구매한 물자로 지원받았으며, 그 결과 민간인과의 사이에 많은 마찰과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독일-프랑스 국경을 넘고 나서도 수송부대는 전투부대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중략)
철도가 승리에 기여했을까?
군사사 연보에서 1870~1871년의 작전은 종종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는 일선 부대가 기지와 근대적인 병참선을 유지하면서 신중하게 편성된 병참기구에 의해 지원받았기 때문이었다.
‘전략의 비밀’이 점차 병사들의 다리에서 차량으로 바뀌는 과정의 시발점이었다.
P.183 군사사 연보에서 1870~1871년의 작전은 종종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는 일선 부대가 기지와 근대적인 병참선을 유지하면서 신중하게 편성된 병참기구에 의해 지원받았기 때문이었다. (중략) 더하여 유럽에서 철도가 전쟁수단으로 등장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바꿔말하면 이것은 ‘전략의 비밀’이 점차 병사들의 다리에서 차량으로 바뀌는 과정의 시발점이었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한 충분한 근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장들이 오랫동안 인정되어 온 것은 어떤 사건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역사적으로 깊게 각인시키는 몰트케(大)의 재능이 우수했다는 증거다. (중략) 역사학자들이 승리를 거둔 한 지휘관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간단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P.183~184 다음과 같은 점들은 지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1) 1870년의 프로이센 육군은 이론적으로는 군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보급기구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기능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행군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았음에도 전쟁 개시 전, 병력을 전개할 때부터 이미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중략) 군대의 보급과 철도가 무관해지면서 야전지휘관들은 열차의 소재에 무관심해졌고, 그 결과 열차는 종종 몇 주일 동안이나 명령을 받지 못한 상태로 머물러 있었으며 결국에는 보급할 부대를 스스로 찾아야 했다.
(2) 탄약보급 또한 후방의 보충 체계가 정교해서가 아니라 전쟁기간 중 탄약 소비량이 적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중략) 전체적으로 여기저기서 탄약 부족 현상이 발생했는데 전투부대에 대한 탄약보급은 식량보급에 비해 훨씬 간단한 일이었다. 다른 여러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점에서 1870년의 군사행동은 ‘현대적’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
(3) 철도의 역할이 이제까지 너무나 과대평가되는데, 이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몰트케(大)와 그의 ‘반신’의 중요성을 지나칠 정도로 크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철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병력 전개 기간 동안에 불과했으며, 그 후 작전의 기동단계가 끝나고 승리가 거의 확실해질 때까지는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는 부분적으론 철도교통 그 자체의 문제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철도종단점이 전투부대를 따라갈 수도 없었으며, 전선까지 보급물자를 이동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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